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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반항의 눈빛 한번 쏘아보지도 못한 채, 그녀가 앉기만을 기다렸다.
누구였지…
얼굴,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찾던 것은 그 아이와 나와의 공통된 기억이었다. 흔히 추억이라고 부르는..
같이 피구를 한 적도 없었고, 학교 끝나고 같이 집에 간 적도 없었고,
점심시간 때 같이 도시락을 먹은 적도 없었다.
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…..
국민학교 생활 6년 내내 단 한 번 있었던 성교육 시간 이후,
가정선생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질문에 키 큰 몇 여자애들이 손을 들었고 그 아이는 그 중에 한 명이었다. 지금 생각해보면 초경이나 브래지어 착용여부를 물어봤던 거 같았다.
나보다 키도 크고 주근깨가 있는 통통한 볼이 귀여웠던 아이, 지연이.
그렇게 지연이는 당돌하게 내 옆에 다가왔다.
당돌했지만 그게 전부였던 지연이.
앉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한다. 오히려 내 시선을 피하는 거 같았다.
“야.. 니…… 왜 내 옆에 앉았노?”
“……………………”
궁금한 건 못 참는 내 성격이 지연이의 창피함을 증폭시키고 있었다. 아 물론,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.
내 질문에 얼굴이 달아올랐을까.. 갑자기 얼굴이 붉그스레 달아오른 지연이를 보고 놀란 마음에 그녀의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.
“열은 안 나는데, 와 이라노… 니 어디 아프나?”
“만지지마라! 지기삔다!!”
황급히 손을 빼 민망한 두 손과 내 마음을 모아 허벅지 사이에 꼬…옥 끼웠다.
‘내 시러하나.. 와 이카지…’
‘아.. 한달 동안 우야지.. 누구랑 떠들고 노노…’
이런 생각으로 친한 운동바보들의 자리파악에 나섰다.
끝까지 여자 옆에 앉길 거부하는 몇 운동바보들의 무의미한 저항이 선생님에 의해 가볍게 정리될 때쯤, 책상들은 언제나처럼 무의미한 38선에 의해 반 토막이 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월례행사였던 짝짓기는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.
“우리 38선 안 긋나?”
“어.”
“알겠다.”
통일이 이렇게 쉽다니….
지난 50년 간 우리 할아버지, 할머니들과 아버지, 어머니들이 그렇게 고생해도 안 되던데…
나랑 지연이 책상은 수 많은 분단책상들 사이에 유일한 통일책상이었다.
이상하리만큼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지연이를 보면서 단 한번도 지연이가 날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. 나는 세상 제일의 바보멍청이였다.
나보다 키가 10cm나 크고 가슴은 불룩하고 먼가 어른 같은 표정을 짓는 지연이는 나를 자주 놀렸다. 귀엽다느니, 조그맣다느니… 난 그 당시 귀엽다는 말을 싫어했다. 아이 같다는 말처럼 들려서 자존심 상했었다.
그런 지연이를 꼬집거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“말괄량이 삐삐”라고 놀리면 도망가기를 쉬는 시간마다 반복했다.
“니 잡히면 지기삔다.”
“지기봐~ 지기봐~”
“쪼꼬만 게 자꾸 까부러라~”
“니 진짜 쪼꼬맣다고 자꾸 그랄래?”
약속이라도 한 듯 한대씩 치고 받다가…
우연히 지연이 가슴에 닿게 된 손바닥으로부터 내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펼쳐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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